1. 시작하면서
이 책은 10월 초에 사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묵혀두다가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읽었던 책이다. 독서력을 높여보고자 '구의 증명'과 다른 결의 소설을 찾아보다가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초록색의 책이 눈에 띄었다. 일단 초록색 바탕에 알록달록한 집이 그려져 있는 표지가 귀여워서 마음에 들었고, 소설 내 대화가 전라도 사투리라 신선하기도 해서 다른 책은 보지도 않고 냉큼 사 왔다. (이땐 몰랐지. 심한 전라도 사투리가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울 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소개를 하기 전에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인 '빨치산'에 대해 알고 가면 좋을 것 같아 간단한 설명을 가져와봤다. 아래 링크 걸린 웹사이트에 가보면 한국전쟁과 빨치산의 활동에 대한 여러 설명이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참고해 보시길.
‘빨치산(partisan)’이라는 말은 프랑스어 ‘파르티(parti)’에서 유래하였는데, 파르티란 도당·동지로 해석된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빨치산이라는 뜻은 일반적으로 한국전쟁 전후에 반제국주의와 반자본주의를 타도하여 공산주의 인민공화국을 건설할 목적으로 지리산을 대표로 하는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 무장 투쟁을 전개했던 좌익 집단을 가리키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http://aks.ai/GC00602579
빨갱이는 많이 들어봤어도 빨치산은 처음이라 대충 '빨갱이랑 비슷한 의미겠거니...'하고 어렴풋이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이제 와서 '초반에 미리 개념 좀 찾아봤으면 좀 더 등장인물들에 이입해서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 잼병인 나는 책이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고... 그래서 읽는 속도도 점점 느려지고... 결국 다 읽는 데 한 달이 걸림...😥😂
2. 책 소개
이 책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식으로부터 시작하는데, 며칠 동안 장례식을 치르며 주인공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아버지의 일생을 듣고 느끼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자신은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나보니 '빨치산의 딸'이었다는 주인공은 책 초반에 아버지에 대해 시니컬하고 원망스럽다는 태도(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를 보이는데, 내용이 전개되며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의 다른 면모들을 듣고 발견하며 그 태도가 점점 누그러진다. 책 마지막에는 아버지를 '빨치산' 혹은 '빨갱이'가 아닌 본인의 '아버지'로서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는데 그때는 조금 뭉클했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는 젊었던(빨치산 활동 당시) 아버지가 살려준 순경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순경을 그만두고, 얼마 후 뭐라도 시켜달라고 아버지를 찾아온 에피소드다. 목숨을 살려준 은혜를 갚는다고 뭐라도 시켜달라며 찾아온 '구'순경을 아버지는 매몰차게 내쫓았고, 그 '구'순경은 약 삼십 년 후에 다시 아버지를 찾아와 왜 그때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는지 따져 묻는데 그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과 그 이후 딸의 회상이 인상 깊었다.
질 게 뻔한 전쟁이었소.
우리야 기왕지사 나선 몸이제만 그 짝은 사상도 없고 신념도 없는데 멀라고 뻔히 질 싸움에 끼울 것이요.
질게 뻔한 싸움을 하는 이십 대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목숨을 살려주었던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려 있던 이십 대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3. 책을 읽고 난 후
한국사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고 공부도 제대로 안 했던 터라 '역사적인 비극'스러운 부분에서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고, 이 책에서 사람을 설명하는 방법이 역사책에 나올법한 사건들을 바탕으로 설명하다 보니 나중에는 누가 누구인지도 헷갈렸다. (한 텀 쉬고 다시 책을 들었을 때는 진짜 기억이 안 나서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찾아보기도...🤦♀️) 결정적으로 대화에 전라도 사투리가 강해서 어떤 문장은 2~3번 읽어야 이해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3n 년을 살면서 처음 들어본 단어도 있어서 한국어 사전까지 검색해 봤다. 그래서 술술 읽힌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던 듯하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 마지막에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이게 소설인지 자서전인지 헷갈렸다. 작가님이 전남 구례 출신인데 이 책에서 주인공과 아버지가 살았던 곳도 전남 구례이고, 작중 아버지가 자주 했던 말이 작가님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 읽고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 책은 자전적인 소설로 작가님의 부모님 이야기를 각색한 거라고 한다.
솔직히 '빨치산'이며 '빨갱이' 같은 내용보다는 한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면면을 가지고 있는지, 사람이 얼마나 입체적인 생물인지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딸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제라도 이해하고 가슴에 묻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아래는 몇 개 기억에 남는 구절들이다.
"또 올라네."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 번만 와도 되는데. 한 번으로는 끝내 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할배가 그랬는디, 언니가 여개서 썽을 냈담서? 할배가 아줌마 궁뎅이 두들겠다고?"
아무튼 아버지는 제 허물도 제 입으로 까는 데 선수다. 그것도 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그때게 할배 맴이 요상허드래. 아부지라는 거이 이런건갑다, 산에 있을 적보담 더 무섭드래. 겡찰보담 군인보담 미군보담 더 무섭드래."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