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하면서
사실 나는 독서력이 강한 편은 아니다. 내가 책을 찾을 때는 주로 마음이 힘들어서 다른 신경 둘 곳을 찾을 때 혹은 책 한 권을 빨리 읽고 소소한 자기 효능감을 느끼고 싶을 때이다. 짧은 여름휴가를 보내며 회사 일이 자꾸 생각나 괴로웠는데, 안 되겠다 싶어서 가까운 서점을 찾았다. 읽고 있던 책이 있었지만, 생각만큼 내 취향은 아니어서 새 책을 사기로 결심하고 책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오은 님의 "다독임"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표지에 있는 아기가 귀엽기도 하고 "다독임"이라는 말이 꼭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나는 수필, 에세이 부류의 글이 어렵지 않고 술술 읽혀서 좋아하는 편이라 몇 장 읽어보고 고민 없이 이 책을 사기로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책을 이미 다 읽은 후인데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는 몇 구절이 있다. 마음에 들어서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까지 칠해놓았는데 아래에서 몇 구절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2. 짧은 책 소개와 내 생각
위에도 썼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금방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맨 처음 작가의 말에 이런 부분이 있다.
- 그때부터 나는 내 안의 모든 부기를 빼려고 애썼다. 아빠가 말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에는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p.8, 작가의 말)
이런 부담스럽지 않고 담백한 책이 나온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싶었다.
이 책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작가님이 쓰신 글들을 엮어서 한 편의 책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소제목마다 날짜가 적혀져 있는 것을 보니 그날의 일기를 모아놓으신 건가 싶기도 하다. 한 소제목 당 길어도 2~3장이라 시작하기도 쉽고 쉬어가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너무 좋았던 부분이 많은데 다 적긴 너무 많은 것 같아 몇 개만 뽑아 소개하려고 한다. 해시태그(#) 뒤에 적힌 말은 내 생각을 적은 것이다.
1) 다시 한 판 하라는 거에요.
- 화면 위로 'You Failed'란 문구가 떴다. 한 아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뜻이야?" "실패했다는 거야." 다른 한 아이의 표정이 덩달아 어두워졌다. 그 모습이 몹시 귀여워서 나는 둘에게 다가가 물었다. "실패가 무슨 뜻인지 아니?" "다시 한 판 하라는 거예요." (p.32)
- 이윽고 마지막 사탕이 깨지자, 화면에 'Level Completed'란 문구가 떴다. 아이들은 환호했고 나는 그 모습이 기특해서 박수를 쳤다. 한 아이가 물었다. "이건 성공했다는 뜻이야?" "응, 이제 다음 판에 가도 된다는 거야." (p.33)
#가끔은 어린 아이들의 혜안(?)에 감탄하게 된다....
2) 다음이 있다는 믿음
- 나의 다음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이때까지 하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지금은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중이다. 경력의 단절보다 무서운 것은 다음에 대해 꿈꿀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p.128)
- 단지 나는 아직 혼자여서 심신이 상대적으로 가벼울 때 딴 생각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무모하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한 시기가 끝나야 비로소 다음이 온다고 믿는 것이다. (p.129)
- 두렵지만, 그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은 다음이 있다는 믿음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과 살아온 경험을 나는 믿는다. 두 번은 없다. 그러나 다음이 있다. 다음은 있다. 그리고 분명, 다음에만 할 수 있는 것들, 다음이라 비로소 가능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p.130)
#지금 하는 일이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있던 터라 이 부분이 너무 공감됐다. 비록 지금 엄청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더 늘어나기 전에 나의 다음을 계획하고 싶다. 고려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지기 전에 다른 생각을...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다. (사실 그래서 이 블로그를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3) 그날부터 나는 걷기 시작했다.
- 무른 나른 인정하는 것이 단단해지는 첫걸음임을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 첫걸음을 떼고 나가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이제야 겨우 단단해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단단하다는 것은 외부에서 어떤 힘을 받아도 쉽게 변하거나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소와 똑같이 일하고 밥을 챙겨 먹고 주위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고 동을 지나쳐 구가 바뀌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여기를 지나고 나면, 여기만 건너고 나면 햇볕이 내리쬘 것 같았다. 그 햇볕을 받고 나란히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 단단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p.196)
4) 네가 하면, 네가 하기만 하면
- 직접 부딪히지 않는 한, 불안과 걱정은 해소될 수 없다. (p.256)
- 아무것도 아님을 발견하기 위해 무수한 아무것을 거쳐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아무것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보잘것없을지도 모르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아무것 말이다. (p.259)
5) 마음에도 운동이 필요하다
- 마음의 근력은 유연한 태도를 갖게 해준다. 평정심을 유지함으로써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잃지 않게 도와준다. 마음의 지구력은 힘든 일이 있을 때 특히 빛을 발한다. 어떻게든 나를 일상에 붙들어 매 주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 발 또 한 발 내딛게 해주는 것도 마음의 지구력이다. 하루를 살아내는 힘이 모이고 쌓이면 삶은 더 이상 살아지는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게 된다. (p.261)
#3), 4), 5) 구절을 지금 보고 있자니 이 책을 읽을 때의 내가 마음이 정말 힘들었구나 싶었다. 나는 잔걱정이 많고 불안이 높다. 그 때문에 남편은 내 취미를 '걱정하기'라고 할 정도인데, 저 글들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생각만큼 대담하고 의연한 사람은 아니며 내 마음의 근력과 지구력이 너무 부족하다.'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며 '오늘만 버티자.'를 다짐하는데, '살아지는 것'이 아닌 내가 주도적으로 사는 삶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오늘만 '버티자' 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자'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어쩐지 마음의 근력과 지구력 기르기라는 숙제가 생긴 듯하다.
3. 책을 다 읽고
이 책에는 사람을 뜨끔하게 만들어 찔리는 구절이 있기도 하고, 이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구나 하는 부분도 있다. 나와 닮은 구석을 보면서 '나만 이런 것은 아니다'라는 위안을 받기도 한다. 작고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아무래도 다 읽고 난 이후에는 이 책의 제목처럼 누군가가 나를 다독여준 것 같은 따뜻한 느낌이 든다. 위로받고 싶을 때,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히는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